귀멸의칼날게임 [에프워드] ④ 가모장 사회의 ‘후계자’들 [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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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또또링 작성일25-08-17 22:43 조회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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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남편 성이 뭐였더라?”
OO이의 이름은 답을 듣고서야 완성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여성 지인이 자신의 아이 이름을 소개했을 때 그 지인의 성씨, 즉 엄마의 성을 나도 모르게 붙여서 불렀다가 제대로(?) 바로잡힌 적 말이다. 들어도 모를 친구 남친, 친구 남편의 성보다는 바로 내 앞에 있는 친구의 성이 제멋대로 자석처럼 아이의 이름에 착 들러붙었다. 죄송하지만 사실 지금도 OO이 아버지의 성씨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누구의 성을 이어받느냐는 부계사회와 모계사회를 가른다. 성씨가 부계와 모계를 구분하는 유일한 기준은 아니지만, 일단 엄마 성을 물려받는 게 당연한 사회라면 그 사회는 모계사회라고 부를 수 있다. 한국은 ‘부성 우선주의’를 따르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모성을 이어받거나 모성으로 변경할 수 있다. ‘가부장제’라는 말로 대표되듯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부계사회에서 만들어진 제도와 전통들로 짜여 있다.
한국 사회에서 아이의 이름을 듣고 나 같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자기 성을 물려주겠다는 여자친구와 싸웠다, 엄마 성을 따르게 하고 싶어 고민이다 등의 이야기는 온라인 커뮤니티 단골 싸움 소재다. 부계 성씨, 즉 현상 유지를 주장하는 쪽과 모계를 따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쪽 모두 나름의 합리성을 내세운다.
부계사회 전통은 모두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에프워드]에서는 성씨와 가문의 자원, 가정 내 영향력 등이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모계사회는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여태까지 그래왔으니까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를 넘어 관습 중 현재와 미래에 적용할 수 있는 것과 적용할 필요가 없는 것을 ‘상상’해보려는 시도다.
중국 윈난성 모쒀족 사회는 현존하는 모계사회 중 대표적인 곳이다. 모쒀족은 ‘여성의 핏줄을 따라 가족과 친족이 구성되는’ 모계제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여성이 가장이고 여성이 낳은 아이는 아버지를 묻지 않고 여성의 자녀로 인정하는 ‘가모장’ 사회인 것이다.
모쒀족 사회는 여성의 성적 자유와 재생산권을 보장한다. 이른바 ‘방문혼 제도(주혼·Walking Marriage)’에서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난다. 성인식을 거친 여성은 집에서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며, 이 공간에서 결혼 제도 없이도 원하는 남성과 자유로이 관계맺을 수 있다. 남성은 여성의 거처에서 밤을 보내고 새벽이 되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는 여성이 자신의 집에서 양육하고 모계를 따라 집안의 재산과 전통을 물려준다. 아버지가 누군지 묻지 않기 때문에 모든 아이는 평등하게 자녀로 인정받는다. 남성은 자신의 친자녀에 어떠한 책임도 권리도 없으며, 친자녀가 아닌 누이의 자녀를 돌본다. 여성과 남성이 결혼하거나, 독자적인 가족을 꾸리거나, 남성 쪽 집에 들어가 살지 않기 때문에 태어난 아이는 온전히 모계 혈족의 일원이 된다. 여아가 태어나는 것이 집안의 경사인 것이다. 집안의 경제권 또한 여성이 갖는다. 이러한 전통 덕택에 모쒀족은 흔히 ‘어머니의 나라’로 불린다.
싱가포르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추 와이홍은 중국 윈난성 모쒀족과의 교류를 책 <어머니의 나라>(흐름출판, 2018)로 남겼다. 이 책에는 중국과 싱가포르의 부계 전통에 익숙한 저자가 외부인으로서 모쒀족 공동체를 보고 느낀 충격과 감탄이 잘 드러난다. 온 사방이 부계사회로 둘러싸인 와중에 모쒀족이 어떻게 모계 전통을 고수할 수 있었는지가 그의 주된 의문이었다.
추 와이홍은 모쒀족이 모계 가족을 이루는 메커니즘을 할머니부터 시작하는 3대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우선 집안의 여성으로부터 오직 딸 쪽의 자녀들에게 혈통이 이어진다는 대원칙이 존재한다. 1세대 할머니는 자신의 남자 형제들과 한 가족에 속한다. (출산한) 다른 자매들은 별도의 가정을 꾸렸기 때문이다. 이어 자신이 출산한 자녀가 전부 그의 가족에 속함으로써 2세대가 형성된다. 3세대는 오직 딸 쪽 손주들로만 이뤄진다. 아들에게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는 생모의 가족, 즉 다른 가족에 포함된다.
모쒀족 가정에 남자가 없지는 않다. 할머니의 남자 형제, 엄마의 남자 형제가 남기 때문이다. 아이의 생부가 생모 쪽 가족으로 편입되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누이에게 속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남성이라는 성별에는 세대와 가계를 구분하는 ‘핵‘으로서의 기능이 전혀 없는 것이다. 부계가 이어지는 방식과 정반대다.
이밖에도 문화인류학자와 고고학자들은 기원전이나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모계사회였던 공동체를 찾아냈다. 어떤 공동체를 모계사회라고 지목하는지는 학자마다 다르지만, 이러한 공동체들은 여성의 사회 활동과 상속, 재생산권, 경제적 영향력을 폭넓게 인정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모쒀족을 비롯해 모계 소수민족 공동체의 사례는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 사회가 기반한 합리성을 살펴보는 일은 분명 흥미롭지만, 부족이나 민족 집단은 규모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소수민족의 전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점 또한 아쉬운 대목이다. 이로 인해 몇몇 소수민족 사례는 극히 드문 예외로 비칠 뿐, 국가나 전 세계처럼 더 큰 규모의 사회를 무대로 대안적 상상을 가능케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모쒀족 사회가 보여준 ‘모계사회 나름의 합리성’을 극한으로 밀고 나가면 어떻게 될까? 민족보다 더 큰 규모의 인간 사회가 구석구석 모계사회 요소를 갖추고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현실에서는 답을 찾기 어렵지만 작가가 창조한 가상의 세계, 즉 픽션을 통해 그 면면을 그려볼 수 있다.
모계사회를 소재로 하는 작품은 흔히 ‘성별 반전’, ‘미러링’, ‘SF’ 등으로 표현된다. 작품 속 세계관이 어떻게 모계 전통을 구축하게 됐는가, 그 설립 과정과 유지는 순탄했는가 등을 설명하기 위해 작가는 여러 장치를 동원한다. 또 단순히 누구의 성씨를 물려주는가, 집안 가장이 누가 되느냐에서 더 나아가 어떤 성별이 더 큰 사회·경제적 권력을 차지하는가,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어디까지 반전되는가 역시 상상의 재미를 자아낸다.
엄마 성 따르기에 반대하는 이들은 흔히 ‘엄마 성을 받는다고 해봤자 결국 외할아버지(남성)의 성이 아니냐’고 비아냥대곤 하지만, 성씨를 물려받아 가문을 이어갈 자격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꽤나 큰 문제다. 외할아버지의 성이 아들이 아닌 딸을 통해 계승된다, 엄마의 성명에 있는 성씨가 대를 이어 보존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가문을 중시한 전근대 일본에서는 이 문제가 특히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 이를 배경으로 한 가장 저명한 작품으로 일본 만화가 요시나가 후미가 그린 <오오쿠(大奥)>를 꼽을 수 있다. <오오쿠>는 에도 막부 시기 최고 권력자인 쇼군이 사실 여성이었다고 설정한다. 이러한 성별 반전을 위해 남성만 걸리고 치사율이 매우 높은 전염병, ‘적면포창’이 작중 장치로 쓰였다. 적면포창은 곰에게서 유래해 온 몸에 발진을 일으키는 병으로 묘사된다. <오오쿠>는 적면포창으로 인해 남성 인구가 여성 인구의 5분의 1까지 떨어지고, 쇼군가(家)에도 그 파장이 미치며 결국 여성이 쇼군과 그 후계자, 다이묘(영주), 가주가 되면서 벌어지는 가상 시대극이다.
실제 역사에서 오오쿠는 남성 쇼군의 모친과 정실·측실, 쇼군을 위한 여성이 모여 생활하는 금남의 구역이었으나 만화 <오오쿠>에서는 여성 쇼군을 위한 남성들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쇼군이 지명한 남성이 쇼군과 밤을 보낼 자격을 얻고 후계자의 생부 혹은 양부가 된다. 이러한 전환의 과정이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오오쿠>에서 초기 여성 쇼군의 존재는 측근만 아는 기밀로 부쳐졌으며 여성 쇼군은 남성의 이름, 남성의 복장으로만 나설 수 있었다. 그러다 남성 인구가 격감하는 것을 버틸 수 없게 되자 여성 지배와 여성 상속, 즉 모계로의 전환이 자리를 잡았다. 여성은 쇼군가뿐만 아니라 각 가문의 후계자가 된다.
이러한 모계 세계관의 합리성은 다음과 같은 대사로 잘 설명된다.
임신·출산을 직접 수행하는 여성은 자신에게서 태어난 아이를 자신의 혈통으로 인식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다. 여성의 주변인들도 그 여성이 직접 임신하고 출산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모계를 따르는 이상 생부가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다. 남성이 아이를 두고 ‘진짜 내 핏줄인지’를 확신할 수 없는 탓에 여성의 순결과 정절을 중시하게 된 가부장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여기에 더해 <오오쿠> 세계에서 남성은 제아무리 칼을 찬 무사라고 하더라도 적면포창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한 ‘약한 몸’으로 간주된다. 부계가 모계로 반전되는 <오오쿠> 세계관은 이렇듯 설득력을 확보한다.
모계사회를 상상할 때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소설을 빼놓을 수 없다.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란 장르는 여성주의 시각에서 상상한 유토피아를 그린다.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역할이 얼마나 뒤바뀌는지, 성별 위계가 존재하는지, 여성이 겪는 차별과 폭력을 남성이 겪는 일명 ‘미러링’이 있는지 등의 설정은 제각각이다.
대표적으로 샬럿 퍼킨스 길먼이 저술한 <허랜드>(궁리, 2020)는 절벽 위에 고립돼 2000년 동안 존속된 여성들만의 나라를 배경으로 한다. 작품 속 여인국(女人國)은 처음부터 여성만의 공간은 아니었다. 자연재해로 남성이 극소수만 살아남고 살아남은 남성들이 모든 여성을 상대로 지배권을 가지려 하자, 여성들이 필사적으로 저항해 남성을 모조리 없앴다는 설정을 따른다. 유입도 유출도 없이 여성만 남은 이 곳에서 기적적으로 처녀생식(단성생식)이 성공하며 여아만이 태어난다. 모두가 한 어머니에게서 난 자매이고 혈족이기 때문에 성씨는 따로 없다.
여인국에 떨어진 미국인 남성 3명은 이곳이 마치 자신들을 위한 ‘하렘’일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남성이란 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기에 여인국의 인간은 전부 여성이었고 여성이 모든 일을 했다. 남성성의 거울로서 여성성이 없으므로 ‘여자다운 여자’, ‘여성미’란 말 역시 성립하지 않았다. <허랜드>가 그리는 여인국은 미개하지도 더럽지도 질투로 가득차지도 않은, 그저 안정된 인간 사회다.
여인국에는 결혼과 가정, 가족을 뜻하는 단어가 없다고 묘사된다. 가정의 역할은 친구와 동료, 사회가 대신한다. 아이는 사회 유지에 매우 중요하므로 모두가 공들여 키운다. 극중 화자인 밴은 미국인 남성의 시선으로 본 여인국 특유의 자매애와 모성애, 공동 양육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여성만 존재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보다 더 나을까? 대를 잇는 문제를 떠나 여성은 남성 없이 여성이자 인간 그 자체로 살 수 있을까?
<허랜드>는 이러한 상상에 대한 나름의 답이다. <허랜드>를 쓴 길먼은 20세기 미국의 페미니스트 활동가였고 이 작품이 처음 출판된 시점(1915년)은 미국에서 여성 참정권이 보장된 시점(1920년)보다도 5년 앞선다. 그만큼 길먼에게 여인국이란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이자 세상 사람들에게 그럴 듯하게 보여주고 싶은 한 가지 가능성이었을 것이다.
보다 본격적으로 부계→모계 전환을 꾀한 소설로 <이갈리아의 딸들>(황금가지, 2018)을 빼놓을 수 없다. 1977년 노르웨이에서 출간된 이 작품은 이갈리아라는 국가를 무대로 여성과 남성의 사회·경제·문화적 지위가 맞바뀐 사회를 촘촘히 묘사한다. 남성을 기본형으로 하는 영어의 ‘맨(man·남성)’과 ‘우먼(woman·여성)’을 전복해, 이갈리아 세계에선 ‘움(wom·여성)’이 기본형이고 남성은 ‘맨움(manwom)’이다.
이갈리아에서 임신은 족쇄가 아니라 재생산 능력으로 간주된다. 움이 신체적·성적 자유를 누리는 반면 맨움의 신체는 성적으로 대상화되고 정절이 중시된다. 맨움은 자신의 성기를 감추기 위해 전용 속옷인 페호를 착용해야 한다. 조신하지 못하거나 방탕해서 아이의 아버지로 인정받지 못한, 즉 ‘부성보호’를 받지 못한 맨움들은 사회적으로 배척된다. 현실 가부장제 속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을 정반대로 그린 것이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성별 전환을 통해 가부장제를 풍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순히 여성만의 나라, 여성이 주도권을 쥔 사회를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성별임금격차, 성별 분업, 성차별과 같은 젠더 의제까지도 뒤집어 엎기 때문이다. 일부 ‘각성한’ 맨움에 의해 맨움해방운동이 전개되는 대목에서는 저자의 집요함마저 느껴진다.
이갈리아는 꽤 그럴듯한 내재적 논리로 무장하고 있다. 이갈리아에서 맨움이 정절을 강요당하고 가계가 움에서 움으로만 전승되는 데에는 다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위에 인용한 ‘아이를 갖는 특권’은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현실의 부계사회가 나름의 논리로 체제 존속을 주장하고는 있으나, 그 논리는 정확히 반대로 뒤집어 적용해버리면 그만이라는 점을 <이갈리아의 딸들>은 보여준다. 저자 게르드 브란튼베르그가 이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아마도 모계사회의 우월성이 아니라 성차별의 우스꽝스러움 아니었을까.
실존하는 모계사회에서 더 나아가 모계사회를 설정한 픽션을 살펴보는 일은 어떤 의의가 있을까? 픽션은 현실이 존재할 때에만 픽션이 될 수 있다. 현실이 어떠하냐에 따라 무엇을 픽션으로 부를 수 있는지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판타지 소설 대가 어슐러 르 귄은 성별이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인 한 행성의 이야기를 소설 <어둠의 왼손>(시공사, 2014)으로 썼다. 그는 이 작품 서문에서 SF를 “하나의 사고실험으로 읽어도 된다”고 제안했다. 또한 “훌륭한 소설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읽기 전과 조금은 달라졌음을, 조금은 바뀌었음을 깨닫게 되리라”고 했다.
앞서 소개한 실제·가상 모계사회는 ‘모계사회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나’란 의문에 대한 반론으로서 나름의 합리성을 구축하고 있다. 적어도 그 세계관 내에서는 ‘말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읽고 난 다음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 있다. 그 합리성은 우리가 사는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합리성인가? 우리가 가상의 세계를 그럴듯하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반대로 그 세계가 이상해 보였다면 왜 그럴까? 이러한 질문을 통해 픽션 속 모계사회는 현실의 우리에게 다가온다. 내가 낳고도 내 성씨를 물려주지 못하는 부계사회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픽션을 찾아 나서는 이유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실존하는 혹은 가상의 모계사회는 인간 사회의 그 어떠한 제도도 필연이 아님을 보여준다. 앞으로 모계 전승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여성들은 더 많아질 것이다. 그 균열이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 상상을 더해 본다.
▼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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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공장소에서 브래지어(브라)를 벗은 적이 있다.” 때는 2012년 7월, 장소는 일본 후쿠오카였다. 당시 일본은 폭염·폭우가 한창이었다. 여행 후 숙소에 돌아와 현지 뉴스를 틀면 돼지가 불어난 물에 떠내려가는 장면이 나왔을 정도로 비가 많이 왔고, 푹푹 쪘다. 거리 인파에 섞여 땀을 뻘뻘 흘리며 지역 축제(하카타 기온 야마카사) 행진을 구경하던 도중 숨이 막히며 ‘아 정말 쪄죽겠다’는 경고등이 켜졌다. 입고 있던 와이어 브라가 몸을 조여왔다.
오늘은 또 뭘 먹나. 짜장면? 샌드위치? 초밥? 김밥? 파스타? 덮밥? 다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건 그냥 ‘밥’이다.
집에서 한식을 만들어보자. 쌀을 꺼내 물에 슬슬 씻고 쌀뜨물은 따로 냄비에 받아 놓는다. 냉동실에서 물에 불린 다음 얼려놓았던 서리태를 꺼내 쌀 위에 올리고 취사를 시작한다. 냄비에 받은 쌀뜨물에 마른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끓인다. 그사이 감자를 네 개 꺼내 물에 씻고 껍질을 깎아 찬물에 담가 전분을 뺀다. 다른 냄비에 물을 받아 끓인 후 어묵 4장을 데친다. “앗, 뜨, 뜨거” 뜨거운 물에 한 번 데는 건 당연한 일이라 놀랍지도 않다. 데친 어묵을 채 썰고 당근, 양파도 꺼내 껍질을 벗긴다. 감자조림 차례다. 냄비에 간장, 설탕을 풀어주고 깍뚝 썬 감자를 넣은 뒤 물을 자작하게 넣어 불에 올린다. 다시 배추된장국으로 돌아간다. 아까 멸치 육수를 끓이던 냄비에 된장을 잘 풀어준다.
슬슬 헛갈리기 시작한다. 이제 뭐 할 차례더라? 감자조림? 감자조림 불을 약하게 조절한다. 지금쯤 싱크대를 한 번 치워야 나중에 고통이 적다. 감자와 당근, 양파 껍질을 음식물 쓰레기 봉지에 넣고 1차로 설거지를 한다. 보글보글, 된장국이 한 번 끓어오르면 배추를 손으로 뜯어 넣어주고 뚜껑을 덮는다. 밥솥이 “잠시 후 증기가 배출됩니다” 하고 친절히 알려주어 잽싸게 피한다. 치익?? 뜨거운 증기가 밥솥에서 피어오른다. 밥은 OK. 감자조림은 다 되어가나? 젓가락을 찔러 넣어본다. 아직 턱도 없이 딱딱하다. 잠시 휴대폰이나 볼까.
“아악!” 깜빡 10분이 흘러버렸다. 배추된장국은 부르르 넘어 가스레인지를 더럽혔고, 감자조림은 바닥이 탔다. 생각해 보니 어묵볶음은 아직 하지도 못했다. 나에게 남은 건 밥과 얼마 안 되는 양의 배추된장국, 바닥이 탄 감자조림뿐이다. 근데 설거지와 음식물쓰레기는 산더미같이 나왔다. 열 받는다. 이게 맞아?
엄마들은 이 많은 노동을 어떻게 매일 했을까? 그러고도 그걸 당연한 줄 알았을까? 갑자기 가부장제에 대한 분노가 피어오른다. 밥 한 번 더 했다가는 제명에 살지 못할 것이다. 들어가는 노동에 비해 백반은 너무 싸다. 반찬도 많고 설거지거리도 많은데 말이다. 백반은 허름한 곳에서 싸게 때우는 것이라는 인식 때문인가? 이러다 보니 점점 백반 장사하려는 사람이 줄어든다.
한식의 종말이 가까워지는 걸까? 사실상 한식은 헐값으로 책정한 여성들의 노동력으로 유지되어 왔다. 하루종일 불 앞에서 일하고도 ‘놀면 뭐하냐’며 고구마 줄기 껍질을 벗기고 콩나물을 다듬던 여성들 덕분에 그동안 한식을 싸게 먹을 수 있었던 거다.
전국적으로 백반집이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대신 늘어나고 있는 게 있다. 바로 한식뷔페다. 이름은 ‘뷔페’지만 애슐리나 쿠우쿠우 같은 프랜차이즈 뷔페와는 다르다. 이랜드에서 운영하는 자연별곡, CJ의 계절밥상 같은 브랜드 한식뷔페와도 다르다. (참고로 브랜드 한식뷔페는 코로나19 이후 손님이 급감해 많은 매장이 문을 닫았다.) 내가 오늘 얘기할 한식뷔페는 사실상 구내식당이나 함바집, 또는 형태를 바꾼 백반집에 가깝다.
‘백반집의 DNA를 계승한 한식뷔페집’을 관찰해보자. 일단 밖에서는 안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매장 유리에는 두꺼운 시트지가 성인 키 높이만큼 문에 붙어 있는 곳이 많다. 그 위에는 ‘한식뷔페 성인 10,000원’이라는 글씨가 궁서체나 고딕체로 큼지막하게 박혀 있고 먹음직스러운 한식 한 상 사진도 붙어 있다. (가게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이 아닌 업체에서 제공한 일괄적인 사진으로 보인다.) 간판에는 보통 눈에 띄는 노란색과 빨간색을 많이 쓴다. 이가네 한식뷔페, 뚱이네 한식뷔페같이 이름을 사용한 상호가 있고 큰손 한식뷔페, 엄마손 한식뷔페처럼 푸짐함을 강조한 상호가 있다. 또는 역촌 한식뷔페, 서오릉 한식뷔페 하는 식으로 지역 이름을 쓴 상호도 있다. 서초구에는 ‘부정부페(父情buffet)’라는 기묘한 이름의 한식뷔페도 있다는 소문이다.
가격은 싸면 8000원, 비싸도 1만원이다. 식권 구매도 가능해서 한꺼번에 20장 이상을 사면 좀 더 저렴하다.
한식뷔페 안으로 들어가면 다른 뷔페들처럼 조명이 밝지 않다. 낮에 들어가도 약간 어둡다는 느낌이 든다. 선풍기가 계절에 상관없이 늘 돌아가고 있고, 벽면에 붙여 놓은 기다란 테이블엔 커다란 밥통과 국통이, 가운데에는 열몇 가지의 반찬통이 놓여 있다. 테이블이나 의자는 일절 멋 부린 것이 없으며 보통 가장 저렴한 것이다. 앞쪽에는 큰 접시와 국그릇, 숟가락과 젓가락이 직접 챙기도록 놓여 있다.
벽에는 ‘드실 만큼만 덜어주세요’ ‘음식을 남기면 환경부담금 5000원’ 같은 뷔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알림문이 있다. 그리고 ‘백반집의 DNA를 계승한 한식뷔페집’만의 규칙 ‘접시는 1인 1개만 사용해 주세요’도 적혀 있다. 보통 뷔페에서는 한 접시를 다 먹고 나면 새 접시를 꺼내 음식을 다시 퍼온다. 하지만 1인 1만원 이하의 한식뷔페에서는 되도록 한 사람당 큰 접시 하나, 국그릇 하나만 쓰는 게 암묵적 규칙이다.
홀에 있는 직원은 많아도 두세 명을 넘지 않는다. 이들의 움직임은 ‘빠르다’는 말로 표현이 부족하다. 만화에서처럼 몸 뒤에 속도선을 그려넣어야 할 움직임이다. 이들은 떨어진 음식을 재빨리 채워 넣고 사람들이 잔반통에 가져다 놓은 그릇을 정리한다. 그러다 계산할 사람이 있으면 계산도 해주는 멀티플레이어다.
나도 접시를 들고 본격적으로 출정한다. 밥은 보통 두 가지로 쌀밥과 잡곡밥이다. 규모가 작은 곳은 쌀밥만 있다. 국은 싫어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우거짓국이나 미역국이 있다. 메인반찬이 한두 가지 있는데 99%의 확률로 제육볶음이다. 옆에는 알배추나 상추도 놓여 있다. 이걸 제육볶음과 싸먹으면 얼마나 끝내줄까! 생선조림이나 구이도 한두 가지 있고, 이외에는 밑반찬이다. 콩나물무침, 소시지야채볶음, 미역줄기볶음, 가지나물, 어묵볶음, 멸치볶음 등의 호불호가 적은 반찬과 배추김치, 깻잎김치, 깍두기 등의 김치 여러 종이 있다.
한 접시 가득 떠왔으면 이제 본격적으로 해치울 시간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의외로 조용하다. 배경음악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다. 밥 먹는 걸 방해하는 요소를 모두 제거한 건가? 덕분에 다들 밥을 먹는 건가 마시는 건가 싶을 정도로 빠르게 해치운다. 휴대폰을 보며 밥 먹는 사람도 거의 없다. 모두가 밥에 집중한다. 난 아직 퍼온 것의 반도 못 먹었는데 양옆 테이블에 있던 넥타이 아저씨 무리는 이미 이를 쑤시며 나가고 있다. 조금씩 맛볼 것을 가지고 와 천천히 먹는 일반 뷔페들과 완전히 다르다.
새로 옆 테이블에 앉은 기사님이 밥을 먹으며 전화를 받는다. 회색 조끼에는 에어컨 브랜드가 자수로 새겨져 있다. “에어컨이 고장 나셨다고요? 모델명 혹시 아세요?” 그러고 보니 아까 들어올 때 가게 앞에 트럭이 3대가 주차된 것을 봤다. 가게에 뭐가 고장 났나? 했는데 그분들도 그냥 밥을 먹으러 온 거였다.
차랑-. 입구 문 위에 달린 벨이 쉴 새 없이 울린다. 동네 토박이 같은 백발의 할머니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섯 명이나 된다. 그중 ‘GUCIC’라는 글씨가 새겨진 화려한 셔츠를 입은 할머니가 “오늘은 내가 쏜다!”라며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5만원짜리를 꺼내 흔들자, 주변에서 박수가 쏟아진다.
내 건너편 테이블엔 가슴이 훤히 보이게 겨드랑이가 푹 파인 민소매를 입은 건장한 남성이 새로 앉았다. 두툼한 팔뚝이나 운동복으로 보아 누가 봐도 헬스트레이너다. ‘탄수화물은 안 먹겠지?’라고 생각하며 테이블을 흘낏 구경하니 뜻밖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 한 그릇이 있다. (대부분의 한식뷔페에서는 라면을 직접 끓여 먹을 수 있다. 요청하면 주방에서 끓여주는 곳도 있다.) 암암, 라면은 인정이지.
페인트가 잔뜩 튄 카고바지를 입은 노년의 노동자분과 머리가 곱슬인 이주노동자가 마주 보고 앉은 테이블도 있다. 이 둘도 아무 말 없이 열심히 밥을 먹고 있다. 한국 생활을 오래 했는지 둘의 밥상은 거의 차이가 없다. 두 사람의 작업화에는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지만, 식당의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갑자기 문을 열고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서넛 들어온다. 밥을 먹다 놀라서 쳐다보니 나 말고는 아무도 놀라는 사람이 없다. ‘뭔 일 났나?’ 뭔 일이 나긴 났다. 배고픈 건 큰일이니 말이다. 자리를 잡자마자 능숙하게 접시를 집어 들고 밥 위에 제육볶음을 수북이 올리는 모습이 친근하다.
하긴 한식뷔페에는 그 누가 와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나라님이 와도 1인 1접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온들 접시를 마구 쓰면 질타를 받을 것이다. 한식뷔페는 밥을 먹는 누구에게나 평등하니까 말이다.
옛날엔 누가 나에게 밥을 주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때가 되면 밥이 있었다. “밥 먹어라!” 소리가 들리면 밥을 먹으면 됐다. 어른이 된 지금은 단 한 끼도 내 의지 없이는 입에 들어오지 않는다. 밥을 사 먹으러 가거나, 배달시켜 먹거나, 내가 해서 먹거나. 뭐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한식뷔페는 그 결정을 쉽게 만들어준다. 감사하다. 내가 먼지투성이든지 땀을 진탕 흘렸든지 어떤 모습으로 가도 한식뷔페는 묵묵히 나를 맞이해준다. 여기는 내가 대접받는 곳도 서비스를 받는 곳도 아니다. 그들은 밥을 주고, 나는 감사히 먹는다.
배고파 들어와서 배불러 나간다. 이만하면 충만한 한 끼다. <시리즈 끝>
청도군이 청도읍사무소 이전을 이유로 임시로 건물을 임차해 쓰면서 연간 9000만원에 달하는 임대료를 지급 중이다. 임차한 건물을 소유한 법인의 대주주가 경북도의회 현역 의원인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있다.
12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청도군은 2020년 12월 청도읍사무소를 관내 한 건물 1·2층(각 505㎡)으로 임시 이전했다. 기존 읍사무소가 있던 곳이 도시재생뉴딜사업에 선정되면서 이듬해인 2021년 3월 철거가 예정되면서다. 읍사무소는 뉴딜사업이 완료되면 280억원을 들여 만든 생활혁신센터에 입주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해당 사업은 토지 보상 등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표류했다. 2023년 6월 시공사가 건축자재 원가 상승 등을 이유로 사업을 포기한 뒤 지금까지 방치된 상태다.
신축 입주가 무산되면서 임시 읍사무소 임대료 지출이 크게 늘었다. 청도군은 2020년 8월 해당 건물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면서 보증금 1억원, 월세 792만원을 지급하기로 계약했다. 연간 임대료만 9504만원이다. 임시 이전에 따른 당시 인테리어 비용 등으로 3억8000만원도 지출했다.
2023년 8월에는 계약을 갱신하면서 보증금을 3억원으로 올리는 대신 월세는 744만원으로 낮췄다. 여전히 연간 9000만원 가량의 월세를 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해당 건물을 소유한 A법인의 대주주가 현역 경북도의원이라는 점이다. 이 도의원은 A법인의 비상장주식 3만5000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전체 주식의 7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청도군이 A법인과 임대차 계약을 맺은 것이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과 지방자치법에 저촉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방자치법은 지방자치단체가 공공기관을 감사 또는 조사하는 지방의회의원과 수의계약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해충돌방지법도 지방의원이 시청이나 구청 산하기관에 건물 등을 임대할 때 이해충돌의 소지가 있다고 보고 이를 금지하고 있다.
이승민 청도군의회 의원은 “국회의원이 자신의 지역구 관공서와 고액의 임대차 계약을 해도 이해충돌방지법에 저촉이 안 된다고 할 것인가”라며 “군 소유지에 임시 건물을 짓는 등 다른 대안이 있음에도 굳이 해당 건물에 수억원의 리모델링비와 억대 임대료를 준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월세 가격이 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같은 건물 4층에 입주했던 한 업체는 읍사무소와 같은 면적의 1개층(505㎡) 을 쓰면서 수년간 월 180만~22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증금은 2000만원이었다. 3층을 임대한 한 기업도 월세로 150만원을 냈었다. 청도군이 보증금은 최대 7배, 임대료는 2배가량 많이 내고 있던 셈이다.
건물이 임차 수요가 많은 곳도 아니다. 현재 이 건물 4층은 수년째 새로운 세입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3층도 2020년 이후 사실상 공실인 상태로, A법인의 최대주주인 도의원이 자신의 사무실로 쓰는 중이다.
경북지역 정치권 한 관계자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와 다름없었던 웨딩건물을 보증금을 포함해 연간 1억원씩 임대료로 준 셈”이라며 “인구 4만명 수준의 시골에서 그 정도 임대료를 주고 건물을 임차하는 곳은 청도군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도군은 “A법인 최대주주인 도의원이 군의원과 달리 공공기관을 감사 또는 조사하는 업무를 하지 않기 때문에 수의계약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월세 과다 논란에 대해 군 관계자는 “주차 공간이 확보되고 일정한 면적 기준을 갖춰야 하는 등의 요건으로 해당 건물을 임차했고, 보증금 규모와 월세도 감정평가사 등에 의뢰해 책정한 금액”이라며 “내년 연말쯤 새 읍사무소 청사가 준공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A법인 최대주주인 도의원은 “변호사와 선거관리위원회의 자문을 받은 뒤 계약했다”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내 나이 여섯 살에는 구멍 난 양말을 스스로 꿰매 신을 수 있었다. 어른들은 입이 마르도록 나의 재주를 칭찬했지만, 다른 칭찬 거리가 생기자마자 바느질 실력을 뽐내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이제 나는 어른이고 자립생활자이며 자칭 수리·수선가이지만, 바느질 실력은 여섯 살 무렵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칫하면 바늘을 부러뜨리는 힘만이 내 성장의 증거다. 더는 칭찬을 바라고 바느질하는 일은 없다. ‘참하다’ ‘맏며느리감이다’ ‘시집 잘 가겠다’ 이런 칭찬을 받기에는 바느질 땀이 삐뚤빼뚤하고, 흔히 그런 칭찬을 하는 사람들의 기준에는 내 나이가 차다 못해 넘쳐서다. 그런데 ‘시집’ 안 간 덕분으로 ‘내 집’에서 내 뜻대로 엉성한 바느질을 하고 있자면, 그 노동이 그리 지겹지만은 않은 것이다.
어떤 날은 동거인과 각자 바느질감을 들고 앉아서 장편 드라마를 보며 바느질을 한다. 동거인인 이다 작가는 자수가 특기라 손수건에 귀여운 자수를 놓거나, 지워지지 않는 얼룩 위에 멋진 자수를 놓아서 옷을 되살려 입는다. 그와 달리 나는 주로 기능적인 수선을 한다. 너무 큰 베갯잇을 줄이거나, 떨어진 단추를 다시 달거나, 옷의 밑단을 줄이는 일 등이 내 몫이다. 손에 땀이 많은지라 엄지와 검지에 고무로 된 골무를 끼고 바늘을 잡는다. 눈에 잘 안 띄는 곳은 박음질로 튼튼히 꿰매는 데 주력하고, 헐거운 인형에 솜을 넣을 때는 실이 보이지 않도록 공그르기로 마감한다.
어제는 지인의 부탁으로 가방을 수선했다. 작고 귀여운 배낭인데, 어깨끈이 합성 가죽이라 오래 버티지 못하고 껍질이 흉하게 벗겨졌다. 무겁고 불편한 가죽끈 대신 내구성이 좋은 웨빙끈(납작하게 짜인 끈)을 구했다. 해체하기 전 가방의 구조를 관찰하고 사진을 찍어두었다. 어깨끈을 뜯어내며 가방 내부를 살펴보는데, 복잡한 봉제선을 원단 조각으로 덮어 깔끔하게 마감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물건은 해체할 때 비로소 그것의 가치를 깨닫는다. 가격이 얼마인가를 떠나서, 그 물건이 제작되기까지 인류사에 누적된 기술이라든지, 깔끔한 마감 속에 감춰진 노동자의 숙련도와 솜씨를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가방을 만드는 현장을 상상해볼까. 몰두한 사람은 말이 없고, 직물이나 가죽을 밟는 노루발(원단을 잡아주는 재봉틀의 부품)이 드르륵 바삐 움직인다. 꿰인 실을 한 땀 한 땀 놓치지 않고 엮어내야 하므로 노동자의 눈은 돌아가는 재봉틀보다 매섭고 빠르리라.
“아얏!” 바늘에 손가락이 찔리고 나의 현실을 직시한다. 맺히는 핏방울을 무식하게 입으로 쪽 빨아내고 밴드를 매서 지혈한다. 대수롭지 않게 작업은 계속된다. 웨빙끈에 끈 길이를 조절하는 금속 고리를 끼우고 원래 모양대로 고정한다. 고리에 새겨진 브랜드 로고가 제대로 바깥쪽을 향하고 있는지도 잘 확인했다. 완성하고 보니 합성 가죽으로 된 끈보다 훨씬 깔끔해 보인다. 받은 사람이 메자마자 편안할 수 있도록 어깨끈 길이를 처음과 같이 조절하며 생각했다. 내 바느질 실력은 이 정도로 충분한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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